이지윤 전문의
조현병

조현병이 있으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조현병은 안 낫는 병이 아니라, 혈압약처럼 약을 드시면서 일상을 잘 살 수 있는 병입니다. 무기력과 우울은 별개로 치료할 수 있고, 꾸준히 나오시면 달라집니다.

이지윤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핵심요약 3줄

  1. 조현병은 "안 낫는 병"이 아니라, 혈압약·당뇨약처럼 약을 드시면서 일상을 잘 살 수 있는 병입니다. 완치에 꽂히지 마세요.
  2. 지금 느끼시는 무기력과 우울은 조현병 자체의 증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별개의 문제이고, 별개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3. 혼자 생각하면 검은색으로만 갑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와서 다른 생각을 섞으면, 회색이 되고, 점점 밝아집니다.

"이 병은 안 낫는다면서요"

진료실에서 이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조현병은 평생 약 먹어야 된다면서요. 그러면 완치가 안 되는 거잖아요. 그냥 평생 이렇게 사는 거잖아요."

이 생각에 꽂혀 계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우울을 만듭니다. "안 낫는 병이니까 노력해봤자 소용없다" → "그러니까 약도 의미 없다" → "다 포기하고 싶다."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혈압약을 드시는 분은 우울해하지 않습니다

혈압이 있으신 분들은 혈압약 드시고 사십니다. 평생 드시지만, 그걸로 우울해하시지 않습니다. "나는 혈압약 없이는 못 사는구나" 하면서 삶을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당뇨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뇨약 드시면서, 식단 관리하시면서, 일하시고, 여행 다니시고, 가족과 잘 지내십니다.

조현병도 똑같습니다.

약을 드시는 건 맞습니다. 오래 드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약을 드시면서도 일상생활을 잘 하시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일도 하시고, 집안일 하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웃으시고. 처음에 내원하셨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지내시는 분들을 저는 수년간 지켜봐왔습니다.

"완치"라는 단어에 꽂히시면 안 됩니다. 완치가 아니더라도, 약이 나한테 잘 맞는 상태를 찾으면 그때부터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게 목표입니다.


지금 느끼는 우울은 조현병 때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많은 분이 오해하고 계십니다.

조현병의 핵심 증상은 환청, 망상, 와해된 언어 같은 것들입니다. 이건 항정신병제로 관리합니다.

그런데 무기력, 우울감,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 — 이건 조현병 자체의 증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건 별개의 우울증이거나, 약 조정이 안 되면서 나타나는 부가 증상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 조현병 → 항정신병제로 관리 (이건 이것대로)
  • 우울·무기력 → 항우울제나 한약으로 별도 치료 (이건 이것대로)

두 개가 다른 문제인데, 하나로 묶어서 "이 병 때문에 다 안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보면, 항정신병제만 드시고 항우울제가 처방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과에서 짧은 진료 시간에 "무기력합니다" "우울합니다"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면 컨디션이 괜찮은 상태라 "별일 없습니다" 하고 약만 받아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생활 속에서는 우울감이 올라오고, 무기력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시잖아요. 이걸 정신과에 적극적으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지금 무기력감이 심합니다. 우울증 약을 추가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요.


약을 임의로 빼면 더 나빠집니다

약이 나를 가라앉히는 것 같아서, 이 약 때문에 무기력한 것 같아서, 임의로 빼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항정신병제는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입니다. 이 약을 임의로 빼거나, 뚝뚝 건너뛰어서 드시면 호르몬 리듬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불안해지고, 수면이 무너지고, 오히려 우울감이 더 심해집니다.

약이 안 맞는 것 같다면, 임의로 빼지 마시고 병원에 가셔서 바꿔달라고 하세요. 예약 날짜가 안 됐어도 "약이 안 맞는 것 같다"고 전화하시면 당겨서 잡아주십니다.

맞는 약을 찾는 과정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맞는 약을 찾으면 감정적으로 안정되고, 잠도 잘 오고, 무기력감도 줄어듭니다. 그때가 올 때까지, 약 조정은 반드시 의사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예전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는데"

이 생각이 환자분을 가장 힘들게 합니다.

예전에는 활발하고, 일도 하고, 사람도 잘 만나고, 표정도 밝았는데 —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고, 무표정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고. "나는 왜 이렇게 됐지?"

예전 생각하시지 마세요.

이 병의 약을 드시기 시작하면, 어떤 면에서는 아기 같은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부터 하나하나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예전의 나와 비교하는 게 아니라,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겁니다.

어제보다 오늘 한 가지라도 더 했으면 된 겁니다. 오늘 병원에 나왔으면 그것만으로도 된 겁니다. 당장 뭔가 크게 변하지 않아도 됩니다.

처음에 무표정하셨던 분들이, 몇 달 지나면 웃으십니다. 제가 직접 봤습니다. 지금 당장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렇게 됩니다.


검은 생각에 흰색을 섞는 과정

혼자 생각하시면 검은색으로만 갑니다.

"나는 안 돼" "이 병은 안 나아" "가족한테 민폐야" "포기하고 싶어."

이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점점 더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그 생각은 나의 진짜 생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호르몬이 불안정하고, 약 조절이 안 된 상태에서 뇌가 만들어내는 생각입니다. 내가 정말로 그렇게 판단한 게 아니라, 불안정한 뇌 상태가 그런 생각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오셔야 합니다.

검은색 생각만 가진 상태에서, 상담을 통해 흰색 생각을 조금씩 섞어주면 — 회색이 됩니다. 더 섞어주면 점점 밝아집니다. 상담을 하면서 "아, 내가 혼자 생각하던 게 꼭 진짜는 아닐 수도 있구나"를 받아들이시는 것만으로도 달라집니다.

집에서 당장 행동을 크게 바꾸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와서 듣기만 해도 됩니다. 새로운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조금씩 바뀝니다.


가족에게 민폐라고 생각하시는 분께

"이런 병 걸려가지고 아이들한테 항상 미안해요."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반대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따님이 이 병에 걸리셨다면, 따님을 보면서 "쓸모없는 애다"라고 생각하시겠어요? 절대 아니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면 좋겠다" "도와주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시잖아요.

따님들의 마음도 똑같습니다.

가족이 도와주려고 할 때, 그냥 끌려가시면 됩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좋아지겠다!"까지 안 하셔도 돼요. 지금은 그럴 힘이 없으시니까. "가자" 하면 그냥 따라 나오는 것. 그것만 해주세요.

오늘 병원에 나오신 것. 그게 이미 대단한 겁니다.


한방 치료가 할 수 있는 것

조현병 자체를 치료하는 게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조현병의 핵심 증상(환청, 망상 등)은 항정신병제가 담당합니다. 한약이 이걸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한약이 하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항정신병제가 못 다루는 영역 — 우울감, 무기력, 불면, 떨림, 불안 — 이것들을 한약으로 보조합니다.

양약만으로는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처방을 보면 항우울제 없이 항정신병제만 들어가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때 한약이 우울감과 무기력을 보완해주면, 전체적인 삶의 질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침 치료

무기력하고 굳어 있는 몸을 풀어줍니다. 일주일에 한 번 나오셔서 침 맞고, 이야기 나누고, 돌아가시는 그 루틴 자체가 치료입니다.

상담

혼자 있으면 검은 생각만 늘어납니다. 일주일에 한 번, 그 생각에 흰색을 섞어주는 시간. 행동을 크게 바꾸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오셔서 듣기만 해도 됩니다.


꾸준히 오시기만 하세요

조현병 치료는 오래 걸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몇 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수년간 지켜본 분들 중에, 꾸준히 오시면서 몇 년째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들 처음에는 무표정하고, 무기력하고, "안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맞는 약 찾으시고, 한약 병행하시고, 상담 꾸준히 받으시니까 웃으시고, 일상생활 하시고,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지금 당장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렇게 됩니다.

완치에 꽂히지 마세요. 혈압약처럼 드시면서, 내 삶을 잘 사는 것. 그게 목표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나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끌려나오셔도 됩니다. 반대만 하지 마세요.

그것만으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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